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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석전망형

'나로 있는' 마지막 공간은 어디인가: 임종 난민 시대, 집의 의미를 다시 묻다

한국인 4명 중 3명이 병원에서 죽는 나라

통계청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2023년 한국인의 의료기관 사망 비율은 **75.4%**에 달했다. 1991년 약 17%였던 수치가 30여 년 만에 네 배 넘게 뛴 것이다. 같은 시기 자택 사망 비율은 74.8%에서 **15.5%**로 추락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권장하는 자택 임종 비율 30~40%대와 비교하면 한국은 OECD 국가 중에서도 가장 '병원에서 죽는 나라'에 속한다.

문제는 단순히 장소의 차이가 아니다. 보건복지부와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이 2024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임종 직전 1개월간 환자의 평균 의료비는 약 1,300만 원, 마지막 3개월 누적 의료비는 2,000만 원을 훌쩍 넘는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본인이 원하지 않았던 연명치료, 중환자실 이송, 인공호흡기 부착에 쓰인다. 환자는 마지막 순간 '내가 나로 있는' 시간을 잃고 '환자번호로 존재하는' 시간을 보낸다.

'임종 난민'이라는 신조어

최근 언론은 이런 현실을 '임종 난민'이라 부른다. 집에서 죽고 싶지만 돌볼 사람도, 통증을 관리해 줄 방문 의료도 없어 결국 응급실과 요양병원을 전전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보건사회연구원 2024년 조사에서 응답자의 **76.8%**가 "집에서 임종을 맞고 싶다"고 답했지만, 실제로 그렇게 죽는 비율은 15%대에 머문다. 희망과 현실의 간극이 60%포인트에 이른다.

왜 '내가 나로 있을 수 있는' 죽음이 어려워졌나

의료 시스템의 구조적 원인

첫째, 한국의 가정형 호스피스 인프라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2024년 말 기준 가정형 호스피스 운영 기관은 전국 39곳, 자문형 호스피스 운영기관도 38곳 수준이다. 일본이 같은 인구 대비 약 5배의 재택 의료기관을 보유한 것과 대조적이다. 방문진료 수가는 2019년 시범사업으로 도입됐지만, 건당 약 11~13만 원 수준에 불과해 의료기관이 적극 참여할 유인이 부족하다.

둘째, 통증 관리에 필수적인 마약성 진통제(모르핀 등) 처방의 진입 장벽이 높다. 한국의 1인당 모르핀 소비량은 미국의 1/10, 독일의 1/8 수준에 그친다. 집에서 통증을 다스릴 약을 구하지 못하니 결국 병원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가족 구조와 주거의 변화

1인 가구는 2024년 말 782만 가구로 전체의 35.5%를 차지했다. 65세 이상 1인 가구는 213만 명을 넘는다. 돌봐 줄 가족이 곁에 있는 노인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다. 더구나 한국의 주거 환경은 임종을 맞기에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좁은 아파트, 엘리베이터 없는 다세대주택, 침대를 둘 공간조차 부족한 원룸—'내가 나로 있을 수 있는' 물리적 공간 자체가 협소하다.

제도와 인식의 공백

연명의료결정법은 2018년 2월부터 시행됐다. 2024년까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한 사람은 약 250만 명으로 늘었지만, 이는 전체 19세 이상 성인의 5%대에 불과하다. 호스피스 이용률 역시 말기 암 환자의 **약 24%**에 머문다. 죽음을 사전에 설계하고 준비하는 문화 자체가 자리 잡지 못한 것이다.

앞으로 '내가 있을 수 있는' 마지막 공간은 어떻게 바뀔까

정책 전망: 재택 의료의 본격 확대

복지부는 2025년부터 '재택 의료센터 시범사업'을 전국 110곳으로 확대하고, 2027년까지 가정형 호스피스 기관을 100곳 이상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또한 2026년 시행 예정인 '돌봄 통합지원법'은 의료, 요양, 돌봄을 한 지역에서 통합 제공하는 모델로 설계됐다. 일본의 '지역포괄케어시스템'을 벤치마킹한 형태다. 일본이 2010년대 이 시스템 도입 후 자택 사망률을 13%에서 17%로 끌어올린 사례를 한국이 따라갈 가능성이 높다.

시장 전망: 실버 헬스케어와 재택의료 산업의 성장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국내 시니어 케어 시장 규모가 2024년 약 72조 원에서 2030년 168조 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방문진료, 재택 호스피스, 원격 모니터링, 가정용 의료기기 분야는 연평균 두 자릿수 성장이 예상된다. 미국에서 이미 'Home Health Care' 시장은 2023년 기준 3,900억 달러 규모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헬스케어 세부 시장이 됐다.

주거 전망: '나로 있을 수 있는 집'의 재설계

배리어 프리(barrier-free) 주택, 시니어 코하우징, 의료 연계형 실버타운에 대한 수요가 폭증할 것으로 보인다. 국토교통부는 2030년까지 고령자 복지주택을 5만 호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민간에서도 KB금융, 신한라이프, 삼성생명 등이 시니어 레지던스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단순한 '거주 공간'이 아닌 '마지막까지 나로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새로운 부동산 카테고리로 떠오르고 있다.

투자와 생활에 주는 시사점

투자 관점

첫째, 재택의료·방문간호 플랫폼시니어 헬스케어 솔루션 기업이 중장기 수혜주가 될 가능성이 크다. 둘째, 시니어 레지던스를 운영하는 보험·자산운용사의 신사업 부문에 주목할 만하다. 셋째, 가정용 의료기기, 통증관리 약물, 원격 모니터링 디바이스 분야의 국내외 상장사도 관찰 대상이다.

생활 관점

개인 차원에서는 세 가지 준비가 필요하다. ①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전국 보건소, 국민건강보험공단 지사에서 무료로 등록할 수 있다. ② 가족과의 사전 대화—어디서, 어떻게 마지막을 맞고 싶은지 미리 의논해야 한다. ③ 주거 환경 점검—노년기에도 '내가 나로 있을 수 있는' 집인지, 배리어 프리 리모델링이나 이사를 미리 검토하는 것이 좋다.

핵심 요약 3줄

  • 한국인 75%가 병원에서 죽지만, 77%는 '집에서 나로 있는' 죽음을 원한다—희망과 현실의 격차 60%포인트가 '임종 난민' 시대를 만들었다.
  • 재택의료 인프라 부족, 1인 가구 급증, 좁은 주거 공간이 원인이며, 2025~2027년 정부의 재택의료센터·가정형 호스피스 확대로 변화가 시작된다.
  • 시니어 헬스케어 시장은 2030년 168조 원으로 성장 예상—재택의료 플랫폼, 시니어 레지던스, 가정용 의료기기가 핵심 투자 키워드이며, 개인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부터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