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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불발 나홍진, “개봉 전 완성도 최대한 끌어올리겠다”는 말에 마음이 머물렀습니다

처음 그 소식을 봤을 때, 저는 잠깐 숨을 골랐어요

저는 그 한 줄짜리 기사 제목을 보고 한참을 가만히 있었습니다. ‘칸 불발’이라는 단어가 먼저 눈에 들어왔거든요. 누군가에게는 그저 영화계 단신일 수도 있겠지만, 저에게는 어쩐지 어떤 사람이 오래 다듬어 온 무언가가, 가장 빛나야 할 자리 앞에서 한 박자 미뤄지는 장면처럼 느껴졌습니다.

나홍진 감독의 신작이 올해 칸 영화제 진출이 무산되었다는 소식. 그리고 이어진 감독의 말, “개봉 전 완성도를 최대한 끌어올리겠다.” 저는 이 짧은 문장을 두세 번 다시 읽었습니다.

처음에는 안타까움이 컸어요. ‘추격자’, ‘황해’, ‘곡성’으로 이어진 그 강도 높은 세계를 기다려 온 사람이라면, 칸의 레드카펫 위에 그의 신작이 올라가는 장면이 자연스러운 다음 페이지처럼 느껴졌을 테니까요. 그런데 그 페이지가 한 번 접혔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읽었을 때는 묘하게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끌어올리겠다’는 동사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포기도 변명도 아닌, 그저 묵묵히 다시 자기 책상으로 돌아가는 사람의 뒷모습이 보였거든요.

비슷한 처지에 있는 우리는, 사실 같은 걱정을 하고 있어요

저는 이 소식이 영화계 안에만 머무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칸 불발’과 비슷한 모양의 일들이 너무 많거든요.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요.

  • 1년 넘게 준비한 자격증 시험에서 한 문제 차이로 떨어졌을 때
  • 발표를 코앞에 두고 “이번 분기에는 일정이 안 맞아서요”라는 답을 들었을 때
  • 몇 달 갈고닦은 포트폴리오가 1차 서류에서 미끄러졌을 때
  • 출간을 앞두고 출판사로부터 “조금만 더 다듬어 보면 어떨까요”라는 메일을 받았을 때

그럴 때 우리 마음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늘 비슷합니다. ‘괜찮을까.’ ‘이게 끝일까.’ ‘남들은 다 앞으로 가는 것 같은데 나만 멈춘 건 아닐까.’

특히 무언가를 오래 만들어 온 사람일수록, ‘무대에 오르지 못한 시간’이 더 길고 무겁게 느껴져요. 마치 시계가 나만 빼고 빨리 도는 듯한 그 감각, 저도 잘 압니다.

‘완성도’라는 단어 앞에서 가장 흔히 드는 걱정 세 가지

저는 이 소식을 보면서, 우리가 비슷한 상황에서 흔히 품게 되는 걱정들을 한번 정리해 봤어요.

  1. ‘기회의 창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다’는 걱정. 하지만 영화제만 해도 칸, 베니스, 베를린, 토론토, 부산까지 매년 수십 개가 열립니다. ‘올해 그 무대’가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은, 의외로 자주 잊혀요.

  2. ‘지금 완성하지 않으면 영영 못 낸다’는 걱정. 그러나 작품의 수명은 무대보다 훨씬 깁니다. ‘곡성’이 2016년 작품이라는 사실을 떠올려 보면, 10년이 지나도 이야기되는 작품의 시간 단위는 ‘올해 안’이 아니에요.

  3. ‘완성도를 더 높이는 건 핑계가 아닐까’라는 걱정. 가장 아픈 걱정이죠. 사람들은 흔히 ‘완벽주의’를 비효율로만 봅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 기억에 오래 남는 작품과 결과물은, 누군가가 한 번 더 멈춰서 다듬은 것들이에요.

저는 나홍진 감독의 말을 ‘방어’로 듣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나는 아직 이 작품을 다 만들지 못했다’는 정직한 고백처럼 들렸어요. 그리고 그 고백이, 비슷한 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조용한 위로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 걱정 속에서도 우리가 붙잡을 수 있는 단단한 지점

1. ‘무대’보다 ‘작품’이 먼저라는 감각

저는 가끔 헷갈려요. 내가 하고 있는 일에서 정말 중요한 게 ‘발표 자리’인지, 아니면 ‘내가 만든 그 자체’인지.

“개봉 전 완성도를 최대한 끌어올리겠다”는 말은, 결국 그 우선순위를 흔들리지 않게 잡아둔 사람의 문장이에요. 칸은 작품을 빛나게 하는 조명이지, 작품 그 자체는 아니라는 것. 우리에게도 ‘칸’ 같은 무대가 있을 거예요. 승진 발표, 공모전, 시험 합격자 명단, 인스타그램의 첫 반응. 그런데 그 무대가 미뤄졌다고 해서 우리가 만들어 온 것의 두께가 얇아지지는 않습니다.

2. ‘아직’이라는 단어의 힘

영어에는 ‘not yet’이라는 표현이 있고, 한국어에는 ‘아직’이 있죠. 저는 이 두 글자가 어떤 위로의 말보다 단단하다고 느낄 때가 많아요.

“나는 실패한 게 아니라,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이다.”

이 문장을 노트 한 구석에 적어두면, 이상하게도 다음 날 책상 앞에 앉는 게 조금 덜 무거워집니다. ‘칸 불발’도 ‘영영 안 됨’이 아니라 ‘올해는 아직’입니다. 우리의 일도 그래요. 이번 분기엔 아직, 이번 회사에선 아직, 이번 시즌엔 아직.

3. 다듬는 시간은 ‘낭비된 시간’이 아니다

실용적인 이야기도 하나 보태고 싶어요. 보통 한 편의 상업 영화 후반 작업(편집, 사운드 믹싱, CG, 색보정)은 평균 4~6개월이 걸리고, 작가주의 감독의 경우 1년을 훌쩍 넘기는 일도 흔합니다.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시간’은 결코 ‘남는 시간’이 아니라, 작품의 일부분이라는 뜻이에요.

우리 일상에 옮겨오면 이렇습니다.

  • 자기소개서를 일주일 더 묵혔다가 다시 읽는 시간
  • 포트폴리오의 폰트와 여백을 한 번 더 손보는 30분
  • 발표 슬라이드를 소리 내어 읽어보는 한 사이클
  • 보고서를 출력해서 빨간 펜으로 한 번 더 긋는 저녁

이건 ‘미루는 일’이 아니라, ‘완성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30분, 그 일주일이 ‘무대에 올랐을 때의 나’를 결정해요.

4. 묵묵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작은 인용

저는 나홍진 감독의 인터뷰들을 다시 떠올렸어요. 그는 늘 말이 길지 않았습니다. 대신 한 번 카메라 앞에서 한 말은, 작품으로 증명되었죠.

저는 그래서 이번 ‘칸 불발’ 소식을 이렇게 정리하고 싶어요.

‘무대에 오르지 못한 해’는, 그 사람의 실패가 기록되는 해가 아니라, 그 사람이 작품을 더 오래 안고 있던 해다.

이 문장은 비단 감독에게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시험을 한 번 더 준비하는 수험생에게도, 이직을 미루고 사이드 프로젝트를 다듬는 직장인에게도, 첫 책 출간을 한 계절 늦춘 작가 지망생에게도 똑같이 적용돼요.

그래서 저는, 오늘 이렇게 정리하려고 합니다

저는 이 소식을 ‘안타까운 뉴스’ 칸에 넣지 않기로 했어요. 대신 ‘조용히 응원하는 마음’ 칸에 옮겨두었습니다.

칸의 초청 여부보다 더 오래 남는 건 결국 스크린에 걸린 그 작품일 테고, 우리 일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누가 언제 알아주는가보다, 내가 무엇을 어디까지 만들어 두었는가가 결국엔 더 길게 남습니다.

혹시 지금, 비슷한 자리에서 ‘괜찮을까’ 하고 묻고 계신다면, 저는 살짝 옆자리에서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다듬는 시간은 멈춘 시간이 아니라, 가장 정직하게 흘러가는 시간이라고요.


핵심 요약 3줄

  • ‘칸 불발’은 끝이 아니라 ‘아직’의 다른 이름이며, 무대보다 작품이 먼저라는 감각을 되찾게 해주는 소식입니다.
  •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시간은 낭비가 아니라 작품의 일부이고, 우리의 자기소개서·포트폴리오·발표 자료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 비슷한 처지에서 ‘괜찮을까’ 걱정 중이라면, 다듬는 그 시간이 결국 무대 위의 당신을 만든다는 사실이 가장 단단한 위로가 됩니다.